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의료보험

제목 의료서비스와 시장원리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9874


  오는 7월에 시행되는 의약분업에 앞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의사들은 전례없는 대규모 집회를 갖고 의약분업을 반대하고 있으며, 의료수가 인상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시민단체들은 반대로 의약분업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의 수가가 그다지 낮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옳은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생긴 근본적 이유는 불합리한 제도 때문이다. 먼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 둘간의 관계는 많이 변해왔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의술은 사회가 제공하는 비공식적인 안전망이었다. 의사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해서 돈을 받기는 했지만, 돈이 없는 사람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안전망은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려웠다. 이방인들끼리 모여 사는 곳에서 누가 돈이 없고 딱한 처지에 처한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의료행위는 매우 전문적인 기술이 되었다. 따라서 값을 지불한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일종의 서비스가 되었던 것러다현대 복지국가에서 의료보험제도와 의료수가제도, 그리고 의사면허가 만들어진 것은 전통적인 사회가 제공했던 비공식적인 안전망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그대로 두면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너무 올라가 아픈 사람들이 이용하기 힘들 것이며,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을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제공하는 안전망은 사실 소비자들에게는 그리 득이 되지 않는다.

  우선 의료보험제도를 보자. 의료보험제도로 국민들은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싸진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직접 호주머니에서 지불하는 돈의 액수로 의료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선 국민들은 평소에 의료보험관리공단에 보험료를 지불한다. 그리고 예를 들어서 감기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서 직접 3,500원을 지불한다. 그런데 병원들은 의료보험관리공단에서 환자가 담한 3,500원을 제외한 나머지 액수를 청구한다. 의료보험관리공단은 환자들이 낸 보험료로 이것을 다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정부에게 손을 내민다. 정부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의료보험관리공단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료비용은 병원에 직접 지불하는 돈 뿐 아니라 매달 내는 보험료와 보이지 않는 세금을 합한 것이다.

  의료보험이 없었던 경우와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환자가 직접 지불해야 하는 돈이 좀 줄어든 것뿐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의료수가제도의 부작용은 다른 재화의 가격을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종류이다. 의료수가제도가 실시되기 시작한 이유는 환자와 의사는 정보가 비대칭하여 시장에서는 공정한 가격이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수가제도로 형성된 가격이 공정한 것인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의료수가는 여러 가지 복잡한 계산을 통해 만들어지고, 물가상승률을 바탕으로 그 인상폭이 결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비용의 상승률은 수가상승률을 훨씬 웃돌았다.

  수가규제를 피하는 다양한 방법의 등장으로 의료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인력들이 상대적으로 수가가 낮게 책정된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꺼리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예를 들어서 수가규제를 덜 받는 분야를 전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포괄적수가제도로도 해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의료수가제도가 의료기관간에 가격경쟁을 차단한다는 점이다. 가격경쟁이 차단되어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이다. 같은 값이면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을 찾아갈 수밖에 없고, 결국은 줄을 서서 의료서비스의 배급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면허와 의대정원은 어떠한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의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한 의술도 모두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 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공급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의대정원을 늘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의사 1인당 국민수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이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이렇게 제한적이라는 것은 의료수요가 증가했을 때 가격이 매우 큰폭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서비스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공급을 제한적으로 만들어놓아 의사들이 가져가는 地代는 상당한 셈이다. 여기서 地代란 공급을 제한적으로 만들어놓아 얻는 추가적인 이윤을 말한다. 반대로 소비자는 간단한 치료를 위해서도 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와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의약분업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진료나 치료 그리고 약을 파는 것을 모두 의사들이 독점하지 않게 함으로써 약의 오남용을 막고, 적절한 처방과 조제를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명분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이유라면 의료서비스 시장을 보다 경쟁적인 환경에 노출시키고, 소비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도록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나서 병원에서 약을 사든지 약국에서 사든지 개별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정보통신의 발달로 우리는 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은 대부분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다행히 의료서비스 시장에도 이러한 정보통신 혁명으로 인해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올 희망이 보인다. 소비자들은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의료서비스의 가격은 낮아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가 절실할 뿐이다. ♠ 권오성 (자유기업센터공공정책실장 / 헌변명예회원)

[이 글은 헌변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